지난주 다녀온 기청산 식물원에서 찍은 앵무새깃 사진.
앵무새깃 잎들의 생김이 hydrophobic한 표면을 만들어주는 듯 물방울이 잎 표면에 젖지 않고 맺혀 있다. 잎을 살짝 쳐보면 물방울들은 또르르 굴러 떨어진다. 쿵푸팬더 2를 보면서 inner peace를 외치며 젖지 않은 물방울을 이리저리 움직이게 하는 것을 보고 “아니, 꼬마들도 보는 걸 마음의 평화로 다스린다”라는 식으로 보여주면 어떡하나 생각했었는데 개연성은 없지만 inner peace의 상태에서 팬더의 털이 삐쭉삐쭉 서서 앵무새깃 같이 hydrophobic한 표면을 만들어준다면 뭐 가능도 하겠다 싶었다.
지나친 집착이 부르는 정신적인 비극, 그 반면에 결국 자신을 내던져야 이룰 수 있었던 완벽한 완성. 영화를 보는 동안 <데미안>의 구절이 떠올랐다. 새는 알을 깨고 나온다. 알은 새의 세계이다. 태어나려는 자는 한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된다…
알면 알수록 새로운 것이 나오니까 공부는 끝이 없고… 프로에게 결과는 책임져야 할 것이지만 결과로 가는 과정에서 알아가고 파고들어가는 것이 즐겁지 못하다면 얼마나 괴로운 일이겠냐… 물론 깨지고 훈련 받으면서야 힘들기도 하고 괴로울 일도 있겠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그러니까 한 교수님 연배 쯤이 되면 공부하기가 쉽지는 않은 것 같다. 그동안 공부해둔 것을 바탕으로 먹고 산다고 해야할래나. (여튼 (머리가) 어릴때 제대로 공부를 해두어야 하는 것은 참 맞는 말이다) 그래서 2009년 뉴욕에서 열렸던 학회에서 백발의 할아버지 교수님들이 맨앞에 앉아서 노트를 해가며 발표를 듣고 깊이있는 (실제 연구를 계속 하고 있어야 할 수 있을법한) 질문을 던지는 것을 보고 놀랐었고 그 열정이 부러웠고 작년 롱비치에서의 학회 때 학계의 거물 스타교수들이 오히려 백팩 짊어메고 여기저기 세션장을 돌아다니며 열심히 공부하는 모습이 신선했다. 이 길 처음의 마음으로 즐겁게 걸어가보려고…
프로는 “과정”이 아니라 “결과”의 세계다.의도의 순수성이나 과정의 성실함으로 실패한 결과의 방패막이를 삼으려는 사람은 일찌감치 프로가 될 생각을 접는 편이 낫다. @amudoan
amudoan님의 트윗을 보고 뜨끔했다. 아직 배워야 할게 많은 꼬꼬마 학생이라고 스스로에게 피해갈 구석을 주고 있었던게 분명하다. 아직 배워야 할 게 많고 부족한 점 투성이인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프로답게 해나가야겠지.. 선택하고 고민한 결과물에 대해서 책임을 지고… 결국은 결과에 책임을 질 수 있어야 한다. 과정에 충실한 것은 기본 중에 기본인거지… 어떤 것도 방패막이 될 수는 없다.
구체적인 작은 문제를 꾸리고 그 문제에 성실하고 충실하게 답을 줄 수 있는 연구로 완결을 지어보자라는게 첫 단추를 꿰기 위한 요새의 내 바람이다.
박사님과 디스커션을 하다가 수퍼쌀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별탈 없는 좋은 환경에서 수퍼쌀은 high yield를 낼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water stress, drought 등 특정 스트레스 컨디션에 놓인다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수퍼쌀만을 재배했다면 어떤 한 해에 쌀 작물 생산을 아예 하지 못할 수도 있다. 최고의 품질을 자부하는 쌀이 척박한 환경에서는 오히려 yield rate이 높지 않을 수 있다. 각 환경에 적합한 종과 방식이 있을 것이다. 사람 사는 것도 마찬가지, 연구하는 것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싶다.
질문에 쉽고 명쾌한 언어로 답하는 것에 대해서, 무엇을 알고 무엇을 모르는지 설명하는 것에 대해서… 운동을 마치고 체육관에서 돌아오는 길에 좀더 근본적인 부분에 대한 생각을 시작했다.